남은 건 앵그리 인치
"헤드윅"은 존 미첼의 극작을 바탕으로 영화화되고, 이어 뮤지컬로 제작되었습니다. 미군 장교였던 아버지를 따라 세계 곳곳을 여행했던 미첼이 베를린에서 머물렀을 당시의 경험은 뮤지컬 헤드윅의 모티브가 되었습니다. 2005년 대학로에서 탄생하여 지난 16년간 변화하고 진화하며 관객들을 만난 헤드윅 공연의 줄거리를 살펴보겠습니다. 동독에 살고 있는 소년 한셀은 1988년, 아파트에서 어머니와 단 둘이 살고 있었습니다. 그의 유일한 삶의 낙은 부엌의 오븐 속에서 미군 라디오 방송을 통해 데이빗 보위, 루 리드, 이기 팝 등 록의 대가들이 부르는 곡들을 듣는 것이었습니다. 한셀이 일광욕을 하고 있던 어느 날, 그에게 암울한 환경을 탈출할 기회가 주어집니다. 미군의 병사 한 명인 루터가 한셀에게 여자가 되는 조건으로 결혼을 하자고 청합니다. 한셀은 그 때 엄마의 이름과 여권을 받고 헤드윅으로 개명한 뒤 미국으로 이사 가서 행복하게 사는 부푼 꿈을 안게 됩니다. 하지만 성전환 수술이 싸구려였기 때문일까요, 그 수술은 실패하고, 그의 성기엔 여자의 성기 대신 일 인치 정체불명의 살덩이만 남습니다. 미국으로 이주한 헤드윅은 루터에게 버림받고, 그는 캔사스 정션 시티의 트레일러 파크에서 자잘한 심부름거리로 겨우 연명하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그러던 헤드윅은 록 음악을 통해 재출발의 희망을 품게 되고, 록 밴드인 디 앵그리 인치를 결성하여 바에서 노래를 부르기 시작합니다. 어느 날 헤드윅은 17세의 소년 토미 노시스를 만나 사랑에 빠지고, 그에게 록 앤 롤 음악을 전수해주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헤드윅의 비밀스러운 과거를 알게 된 토미는 헤드윅을 배신하고, 헤드윅이 만든 곡들을 가로채어 본인이 록스타로서의 명성을 누리게 됩니다. 토미의 전국 투어 콘서트를 구질구질하게 따라다니며 토미에 대한 분노와 서운함을 표출하던 헤드윅은 토미가 공연하는 타임스퀘어 공연장 옆에 위치한 밀레니엄 극장에서 마지막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습니다.
헤드윅이 탄생시킨 스타들
뮤지컬 헤드윅에 스타 등용문이라는 별명이 붙여질 정도로 매 시즌 항상 높은 관심과 화제를 불러 일으키는 캐스팅을 자랑했습니다. 2021년 7월 30일부터 10월 31일까지 충무아트센터 대극장에서 공연된 이번 13번째 시즌에서도 역시 관객들의 기대를 져버리지 않았습니다. 헤드윅 역할에 오만석, 조승우, 이규형, 고은성, 렌 배우가 캐스팅 되었으며, 이츠학 역할에 이영미, 김려원, 제이민, 유리아 배우가 캐스팅 되었습니다. 거의 두 시간 반 동안 무대에 등장하여 파워풀하게 악기를 연주하는 디 앵그리 인치 밴드의 구성원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기타의 이준, 최기호, 재키, 조삼희, 베이스의 이한주, 홍영환, 드럼의 김민기, 최기웅, 전일준, 그리고 키도브에 유지훈, 정다운 연주자입니다. 이들은 극의 노래를 연주할 뿐만 아니라 각각 슈크슈프, 크리츠토프, 야첵, 슐라트코라는 이름을 갖고 공연에 참여하기도 하는데요, 공연을 관람할 때 이들이 헤드윅과 이츠학과 교류하며 극을 완성해 나가는 모습을 보는 재미도 있습니다. 록 뮤지컬답게 뮤지컬 헤드윅은 무엇보다 엄청난 명곡들을 자랑합니다. 단 한 순간도 눈과 귀가 쉴 틈이 없는 강하면서도 부드러운 에너지를 내뿜는 명곡들에는 ‘테어 미 다운,’ ‘오리진 옵 럽,’ ‘슈가 대디,’ ‘앵그리 인치,’ ‘위키드 리틀 타운,’ ‘미드나잇 라디오’ 등이 있습니다.
타인을 받아들임으로써 완전해지다
뮤지컬 헤드윅은 여러 번 볼수록 감상이 달라지고 감동이 배가 되는 공연입니다. 가발을 쓰고, 화려한 의상을 두르고, 하이힐을 신으며 또각또각 무대를 활보하는 헤드윅의 모습이 처음에는 낯설게 느껴질지 몰라도, 어딘가 익숙한 면이 있습니다. 우리가 그런 헤드윅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그의 행동 하나하나에 집중하다 보면, 결국 그가 전달하고자 하는 메세지가 들려옵니다. 무대에서 즐겁게 뛰어 노는 헤드윅의 모습을 바라보다 보면 대담하게 세상을 향해 소리지르고 원망하는 헤드윅의 아픔이 보이기 시작할 것입니다. 마침내 모든 것을 터트리고, 씻어내고 폭발하며 그 상처들을 연소시키는 헤드윅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작은 힘과 위로가 되어줍니다. 생명의 근원이 된 플라톤의 이야기를 인용하며 사랑을 노래하는 헤드윅은 우리에게 다름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라는 메세지를 전달하고 있으며, 그의 공연을 보는 관객들은 그런 다름을 받아들이는 연습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가 공연 마지막에 손을 들라고 할 때 관객들은 정말로 눈물을 흘리며 그를 지지한다는 의미에서 함께 손을 듭니다. 이 에너지는 공연의 가장 마지막인 앵콜 커튼콜과 리앵콜 커튼콜에서 폭발하며 객석에 앉아있는 모든 관객들은 무대 위의 배우들과 들썩거리게 됩니다. 불완전하고 불확실한 사랑을 하여 그렇기에 늘 아파하는 우리는 타인의 아픔에 공감하고 동정하며 마침내 우리도 완전해질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갖게 될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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