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며
2015년 창작산실 대본공모 우수작으로 선정되어 2016년 창작산실 우수신작과 2017년 창작산실 올해의 레파토리로 선정된 뮤지컬 레드북은 2021년 6월 종로구 대학로 소재 홍익대 대학로 아트센터 대극장에서 두 번째 시즌 공연되었습니다. 뮤지컬 레드북은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자신에 대한 긍지와 존엄을 찾아가는 캐릭터들의 성장 드라마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19세기 런던 빅토리아 시대, 영국은 지독하게 보수적이었고, 여자에게는 숙녀의 도리를, 남자에게는 신사의 도리를 강조했습니다. 하지만 주인공 안나는 본인이 옳다고 생각하는 가치관을 지키며 살고 싶어했고, 한 평생 신사로 살아가는 방법을 배워 결국 변호사로 성장한 다른 주인공 브라운은 그런 안나를 이해하기 어려웠습니다. 약혼자에게 첫 경험을 고백했다 파혼 당하고 도시로 건너와 힘들게 생계를 꾸려가며 살고 있던 안나가 신사 브라운의 ‘응원’에 힘입어 여성 작가들로 이루어진 로렐라이 문학회에 소속됩니다. 그녀는 로렐라이 언덕에서 자신의 추억을 소설로 집필하기 시작합니다. 여성이 자신의 신체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금기시되던 시대에 살고 있던 것만큼, 본인의 소설이 담긴 레드북이 대중들 사이에서 인기를 끌기 시작하자 거센 사회적 비난을 받게 되고, 재판까지 서게 됩니다. 안나의 운명과 이를 지켜보는 브라운의 뒷이야기는 공연장에서 확인하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우리는 로렐라이 언덕의 여인들
뮤지컬 레드북에는 감초같은 캐릭터들이 여러 명 등장합니다. 안나 노크는 힘든 현실을 첫사랑의 발칙한 경험과 기억으로 견디는 솔직하지만 진취적인 신예 작가로서, 차지연, 아이비, 김세정 배우가 연기했습니다. 브라운은 사랑도, 연애도, 인생도 글로 배운 순진하지만 고지식한 변호사로서, 송원근, 서경수, 인성 배우가 연기했습니다. 로렐라이는 로렐라이 문학회의 고문이자 우아하면서도 다정한 캐릭터로서, 홍우진, 정상윤, 조풍래 배우가 연기했습니다. 도로시는 유쾌하지만 카리스마 넘치는 로렐라이 문학회의 회장이고, 바이올렛은 브라운의 할머니이자 안나가 어렸을 때 모셨던 노부인입니다. 방진의, 김국희 배우가 도로시와 바이올렛을 연기했습니다. 원종환, 김대종 배우가 비열한 유명 문학평론가 존슨 및 브라운의 절친 앤디를 연기했고, 안창용, 김승용 배우가 브라운 집안의 정원사인 헨리와 브라운의 또 다른 절친 잭을 연기했습니다. 마지막으로, 로렐라이 문학회의 회원들인 줄리아, 코렐, 메리는 각각 허순미, 김연진, 이다정 배우가 연기했습니다. 뮤지컬 레드북은 한정석 작가의 탄탄한 스토리뿐만 아니라 이선영 작곡가의 아름다운 노래들도 자랑합니다. 가장 좋은 곡을 한 곡만 뽑기 어려울 정도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막의 ‘사랑은 마치’와 ‘우리는 로렐라이 언덕의 여인들,’ 그리고 2막의 ‘낡은 침대를 타고’와 ‘나는 나를 말하는 사람’은 객석에 앉아있는 사람이라면 눈물을 훔치지 않을 수 없게 만드는 곡들입니다.
레드북을 읽고 난 후,
뮤지컬 레드북은 흥미롭고, 유쾌하고, 유머와 재치가 넘치지만 감동도 놓치지 않는 아주 매력적인 작품입니다. 19세기 영국은 순결, 정족, 금욕, 절제를 강조하던 시대였지만 안나를 비롯한 로렐라이 언덕의 주인공들은 세상의 편견에 맞서 본인들을 솔직하게 드러내는 방법을 배우고 알아가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훌륭한 작가들의 상상력과 판타지는 고스란히 객석으로 전달되었고 그들의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 또한 굉장히 서정적이었습니다. 공연 중간중간 반복되어 보이는 강렬하면서도 엔티크한 고서, 삽화의 표현과 로렐라이 언덕의 형형색색의 화려한 무대 연출은 보는 이의 눈도 즐겁게 해주었습니다. 자신을 솔직하게 표현함으로써 비상을 꿈꾸는 여인들의 자유로운 생각을 보고 있자면, 과연 나는 스스로 떳떳하고 솔직하게 살고 있는가? 나 또한 남들의 시선을 신경 쓰며 나를 잊고 있지는 않은가? 라는 생각을 갖게 되었습니다. 타인과 사회가 정해준 틀에 맞춰 사는 것이 행복한 삶이라고 할 수 있는지에 대한 고민을 해볼 수 있는 소중한 작품입니다. 무엇보다, 안나가 레드북을 집필하고, 소설을 쓰기 위한 소재를 소중히 여기듯, 늘 고민하는 마음으로 나와 타인을 대해야겠다는 마음을 갖게 해주는 뮤지컬입니다. 같은 시공간을 경험하고 있는 상황에서 성별보다는 서로가 서로를 공감하는 것이 더 중요한 요즘이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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