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지 보든, 도끼로
뮤지컬 리지는 1892년 미국의 매세추세츠 주의 폴 리버라는 도시에서 일어난 미제 살인 사건을 모티브로 제작한 락 뮤지컬입니다. 1892년 8월의 뜨거운 여름, 부유한 장의사이지만 구두쇠로 소문난 앤드류 잭슨 보든과 그의 새로운 아내가 집 안에서 도끼를 수 차례 맞고 살해됩니다. 보든 가의 둘째 딸인 리지가 친아버지와 양어머니를 살해한 유력한 용의자로 체포됩니다. 피고인이 되어 법정에 선 리지 보든의 곁에는 세 명의 또 다른 여인들이 있었습니다. 그녀의 언니 엠마 보든, 옆 집 친구인 앨리스 러셀, 그리고 보든 가의 시종인 브리짓 설리번입니다. 엠마 보든은 터프한 성격을 갖고 있지만, 열 두 살 터울의 어린 동생을 그 누구보다 사랑하며, 보든 가의 부만 보고 결혼한 양심 없는 새어머니를 어떻게든 내쫓을 궁리를 하고 있는 현명한 여성입니다. 동생이 살해죄라는 혐의를 받고 곤경에 처했을 때 침착하게 그녀의 곁을 지키며 재판을 돕는 든든한 언니입니다. 앨리스 러셀은 보든 가의 여자들만큼이나 비밀이 많은 여성으로, 리지의 친구이자 버팀목이 되어주는 사람입니다. 재판이 진행될수록 앨리스의 비밀 또한 드러나기 시작하는데, 이 뮤지컬의 관람 포인트이기도 합니다. 마지막으로 브리짓 설리번은 보든 가의 메이드로서, 보든 가에서 일어나고 있는 모든 일을 지켜보고 있지만 속을 알 수 없는 신비로운 인물입니다. 네 명의 여성 캐릭터들이 보든 가에서 일어난 일들과 그 속의 비밀들을 서서히 드러내면서 리지 보든의 재판은 반전을 거듭합니다.
공연장과 캐스팅, 그리고 명곡들
2020년 4월 2일부터 6월 21일까지 서울시 종로구 혜화동 소재 드림아트센터 1관에서 공연되었던 뮤지컬 리지는 2022년 3월 24일부터 6월 12일까지 더 넓고 큰 극장인 두산아트센터 연강홀로 옮겨갔습니다. 초연에 비해 무대의 사이즈만 커진 것뿐만 아니라 몇몇 노래 가사의 번역과 마지막 곡인 ‘너의 거친 꿈속으로’의 연출 및 의상이 대폭 변경되었습니다. 재연 공연에서는 전성민, 유리아, 이소정 배우가 리지 보든 역할을, 김려원, 여은 배우가 엠마 보든 역할을, 제이민, 김수연, 유연정 배우가 앨리스 러셀 역할을, 그리고 이영미, 최현선 배우가 브리짓 설리번 역할을 연기하였습니다. 뮤지컬 리지의 모든 곡들은 중독성이 있고, 관객들에게 짜릿한 전율을 선사합니다. 대표곡들로는 ‘보든 가,’ ‘네가 안다며,’ ‘소중한 내 동생,’ ‘머리가 왜 없어?’ ‘끓어오른 분노,’ ‘누군가 무슨 짓을 할거야,’ ‘이제 어쩔거야, 리지,’ ‘너의 거친 꿈속으로’ 등이 있습니다. 커튼콜 때에는 배우들이 무대에 다시 등장해 주요 넘버들을 편곡한 메들리를 부르는데, 관객들과 소통하며 만들어내는 이 장면은 공연의 3막과도 같은 하이라이트 무대이기도 합니다. 특히 ‘끓어오른 분노’로 번역된 ‘Mercury Rising’은 초재연 마지막 공연 날 편곡되어 무대인사 후에 앵콜 곡으로 불러졌는데, 멜로디와 가사가 관객들에게도 많은 울림을 주어 객석 곳곳이 눈물바다가 되기도 했습니다.
속을 뚫어주는 걸크러쉬 뮤지컬
폭발적인 가창력과 에너지로 여자 배우 4명이 무대를 장악하는 모습을 보면 온 몸에 소름이 돋습니다. 무대 뒤에서 혼신을 다해 참여하는 6인조 록 밴드의 연주 또한 훌륭합니다. 무엇보다 마지막 커튼콜에서 강렬한 록 음악에 맞춰 손뼉을 치고 머리를 함께 흔들며 관객들과 교감하는 모습은 환상적입니다. 흥겨운 노래와 드라마틱한 연출도 있지만, 뮤지컬 리지의 관람포인트는 애초에 왜 리지 보든이 친아버지와 새어머니를 살해한 혐의로 재판에 서게 되었는지에 대한 미스테리입니다. 그녀는 과연 부모님을 살해했을까요? 살해했다는 사실이 분명하고 증거도 명백하다면 왜 이 사건은 미제 사건으로 분류되어 남게 되었을까요? 이러한 궁금증을 갖고 공연을 관람하신다면 더욱 재미있게 관람하실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또한, 리지 보든이 극중에 도끼를 들고 화를 분출할 때 관객들은 감동을 받은 나머지 그녀의 아픔에 눈물이 흐를지도 모릅니다. 그녀의 아픔을 지켜보고, 포용하고, 덮어주는 주변 여성 캐릭터들의 서사와 이를 연기해내는 각각 배우들의 비슷하면서도 사뭇 다른 노선을 따라가는 것 또한 이 뮤지컬의 관람 포인트입니다. 실제로 무대 밖에서 친분을 자랑하는 배우들은 종종 다 함께 본인들의 캐릭터 해석, 연기와 연출에 대한 생각을 SNS를 통해 공유하기도 했습니다. 이는 관객들에게 더 많은 볼거리와 생각할거리, 그리고 무엇보다 재미를 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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